❓'청년의 참여' 얼마나, 어떻게 보장되고 있을까
담화에 참여자 대부분이 청년의 참여는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비영리와 사회적경제 생태계 속에서 청년의 참여는 제한적입니다. 사업이나 행사 등에서 청년이 주체가 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대외적으로 진행되는 행사에서도 '청년'이라는 이름이 붙는 행사 말고는 청년패널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특히 업무에서도 그 부분을 많이 느끼고 있었는데요. 나이로 인한 위계질서, 탑다운 방식 등으로 청년이 주도적으로 업무를 하지 못하고 보조적인 업무의 지원자로서 일하게 되는 사례가 많았습니다.
또한 청년의 역할은 기능만 있고 권한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톡톡튀는 신선한 아이디어, 새로운 업무방식이나 툴을 빠르게 배우는 젊음, 긍정과 에너지로 모든 것을 극복하는 패기 등을 청년의 특징으로 뭉뚱그려 청년 개인의 기질과 역량을 존중하지 않고 있었어요. 청년들은 사업의 기획과 방향에는 참여할 순 없었지만, '톡톡튀는 아이디어로 사업명을 정해보라'는 제안을 받거나, 업무적인 힘듬을 이야기해도 '젊은 에너지로 이겨내면 좋겠다'는 대답을 받은 적이 많았습니다.
❓제한되는 참여, 내부 살피면 그마저도 기성의 입맛대로
청년의 참여와 활동이 보장되지 못하는 와중에, 제한된 참여마저도 기성세대가 생각하는 청년의 이미지에 맞춰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청년 패널이 많은 행사도 청년들의 주도적인 참여로 행사가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이 상상하는 청년의 모습이 표출됩니다. 주제나 진행방식, 주최와 주관 등 대부분은 기성세대가 정해 해당 방식에 잘 맞춰 이야기 할 수 있는 청년에게 발언권을 주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청년행사임에도 기성세대가 늘 말하는 주제가 선정되고 청년들이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제한적인 상황이 설정됩니다. 카롱은 "청년 패널이 많아 관심을 가지고 간 행사에서 기존에 하던 이야기와 비슷한 흐름이 주도적이어서 위화감을 느낀 적도 많다"며 "어떤 날은 40대를 훌쩍넘은 패널이 본인이 청년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뜨악하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기성세대가 청년을 주체성을 가진 개인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담론을 재생산하는 도구로 바라보는 시각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방식과 흐름을 계승
(繼承)하는 것이 아닌 답습(踏襲)할 사람을 찾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과 다른 의견을 내지 않고, 10년 이상 내가 시도 해봤지만 해결이 안되는(?) '어쩔수 없는' 조직의 한계에 순응하고, 기존 방식의 한계에 새로운 해결방법을 내어 놓는 '갈등'을 제시하지 않고, 적은 월급이지만 열심히 일하는 기준에 속하는 청년이 청년의 표본으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지니는 "기성세대의 생각과 다른 의견을 불편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고 실제로 그런 이야기를 해 배제된 경험도 있다"며 "그 배제는 공과사 모두에 적용되고 불편한 존재가 되면 업무에 필요하더라도 회의에 부르지 않는 일도 발생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A가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해온 업무임에도 A가 불편한 사람이 되면 갑자기 B를 불러 그 일을 하게 하기도 한다"고 말했습니다.
❓'청년다움'으로 만들어지는 주체성 없는 '기특한 청년'
어른 말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기는데, 기특한 청년이 생기면 좋은 일 아니냐구요? 글쎄요. 청년은 일정한 기질을 가지고 있지 않고 이를 강요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 청년과 기성세대는 '근본적인 다름'이 있습니다. 두 세대는 사회문화적으로 다른 경험을 해왔어요. 그렇기 때문에 기성세대가 편안하거나 당연하다고 느끼는 방식에 익숙함을 느끼기 쉽지 않습니다. 청년의 기존의 방식과 모습에 새로운 방식을 제안할 수 있는 역할을 그 누구보다 잘 할 수 있어요. 또 청년이 권한과 기능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역할이기도 합니다. 기존 기성세대와 비슷한 말과 생각을 하는 청년은 이미 기성세대와 같은 시대와 세상을 공유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기특한 청년은, 청년에 가까울까요. 기성세대에 가까울까요. 물론 판단은 개인의 몫입니다. 그러나 기성세대의의 관점과 방식에 익숙해진 청년은 청년은 언제까지고 어른들의 말을 잘 들어야할 수 밖에 없어요. 이미 30년 이상의 경험차이를 뛰어넘긴 어려울테니까요.
이런 기특한 청년들이 많아지면, 사회적경제와 비영리가 기존에 가진 한계를 넘을 수 있는 가능성은 줄어들 수 밖에요. 기존의 방식과 생각을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면 기성세대가 해결하지 못하는 한계도 같이 물려받을 수 밖에 없거든요. 청년에게 권한과 기능을 주지 않은채로 기성의 방식을 물려주는 것은 존재를 위한 존재 이상이 될 수 없습니다. 기특한 청년보다는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청년들이 더 많아져야 기존의 한계를 돌파할 수 있는 방식이 나오지 않을까요.
❓주체적인 의견과 다양성을 가진 청년이 많아지려면?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다양한 청년들의 이야기와 목소리가 많아지는 것입니다. 사회적경제와 비영리에서 노동하는 청년들은 주변을 볼 수 있는 시야를 확보하기 힘든 환경 속에 있어요. 고강도 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리며 기특한 프레임 속에서 소진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니까요. 누군가의 '나때는~'으로 내 상황이 좋아졌다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청년 개인의 현실 속에서, 사실에 기반해 개인이 주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해요.
주체적인 청년들이 많아질 수 있도록 하는 방법으로 ▲실무자 연대체 조직의 필요성 ▲다양한 의견이 개인의 평가를 저해하지 않도록 HR기준 만들기 ▲기특한 기성세대 찾아 상주기 ▲칭찬도 평가임을 인지하기 ▲문제제기하는 개인에게 문제를 전가하지 않고 조직의 문제를 살피려는 시도하기(넷플릭스 부검메일*) 등이 제안됐습니다. 조직에 영향받지 않는 연대체가 외부에 있으면 힘이 될 수 있을 거에요. 내부에서 문제제기를 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끌어가는 것이 쉬운일은 아니니까요. 함께 문제제기하는 동료가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이를 제지할 수 있는 권한이 없어 어려움을 겪는 일들도 많습니다.
또 기특함을 부여할 수 있는 것도 권력이 있기 때문이에요. 어른에게 기특하다고 말하는 청년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도 어른들에게 기특함을 선물해주자는 유쾌한 의견도 나왔습니다. 우리는 청년의 의견과 방식을 존중해주는 기특한 어른이 필요하니까요. 튼튼은 "조직은 노동자의 퇴사 이유를 조직의 문제로 보기보다 개인의 이유로 치부해버리는 경우가 많다"며 "조직의 문제를 바꿔보려고 하다가 조직에 실망하거나 지쳐서 퇴사하는 사람을 ‘조직의 인정을 받지 못해서’. ‘일을 못하는 사람이라서’로 규정하는 것을 보기도 했고 직접 경험하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넷플릭스에는 ‘부검메일’이라는 조직문화가 있다. 사회적경제조직도 조직의 문제를 살피려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부검메일? : 넷플릭스의 기업문화. 퇴사하는 직원이 퇴사 당일 남은 직원들에게 메일을 보내는 것. 이 메일에는 회사를 떠나는 이유와 회사에서 배운 것, 회사에 아쉬운 점, 앞으로의 계획, 직원을 떠나보내는 넷플릭스의 메시지 등이 담긴다.